[한마당] 벙커 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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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17일 새벽 미국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공습했다. F-117 스텔스 폭격기가 레이더망과 통신시설을 무력화했다. 이어 페르시아만에서 순양함들이 토마호크 미사일 120여발을 발사해 군 지휘통제 시설을 파괴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대응한 사막의 폭풍 작전, 걸프전의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연일 공습이 이어졌지만 이라크군의 손실은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을 거치면서 이라크군은 지휘부와 핵심 전력을 수십 곳의 지하벙커에 분산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지하벙커를 파괴할 신무기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2차대전 때 영국이 사용한 ‘톨보이’에 주목했다. 톨보이는 무게가 일반 폭탄의 10배가 넘는 5.4t이었다. 강철로 만든 6.4m 길이의 몸체에 고성능 폭약 2.4t을 담아 고도 5000m 상공에서 투하하면 5m 두께의 콘크리트 지붕을 관통했다. 폭탄 무게와 강하 속도가 불러온 시너지 효과였다. 땅까지 꺼진다고 해 지진폭탄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개발된 게 BLU-113 벙커 버스터다. 핵무기로 끊어진 초대형 폭탄의 계보를 되살린 야심작이다. 직경 37㎝, 길이 5m의 날렵한 특수강 몸체에 트리토날 295㎏을 담았다. 트리토날은 TNT와 알루미늄 가루를 8대 2 비율로 혼합해 폭발력을 20% 이상 높인 폭발물이다. 지하벙커에 숨은 이라크군은 괴멸됐다. 미국은 BLU-122, BLU-109 등을 추가 개발해 아프가니스탄전과 2차 이라크전에 활용했다.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행정부가 비밀리에 900㎏급 BLU-109 100기를 C-17 수송기에 실어 이스라엘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산악 지대가 아닌 인구가 밀집된 가자지구에 사용돼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그게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현실이 됐다. 지하 7층(18m)에서 회의를 하던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파트 3채가 무너져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했다. 도대체 이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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